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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S/ALT & INDIE

TRIBES: Baby (2012)


마지막 브릿팝 스타 LIBERTINES 이후 2000년대 영국 인디록 씬은 딱 두 가지 큰 클리쉐이 세력(OASIS 따라하기 vs UK 포스트펑크 회고하기) 잔챙이들의 골목싸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형국이 되어 버렸는데, 뭐 FRANZ FERDINAND, BLOC PARTY 등이 반짝 기세좋게 달려들던 때도 있었지만 70년대 원조 펑크/P-펑크 -> 80년대 뉴웨이브/기타모던록/C-86  -> 90년대 슈게이징/싸이키델릭/브릿팝의 족보 안에서 발견되는 무수한 레전드들의 위용을 떠올린다면 2000년대 이후 UK 록씬은 전반적으로 초라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한술 더떠 STROKES와 KILLERS에 영향받은 최하급 UK 네오 포스트펑크 클리쉐이들에게까지 9점대 점수와 '올해의 (신인)록밴드' 노미네이트의 훈장과 왕관들을 몰빵하듯 씌워주려는 '찌라시' NME와 브릿어워즈의 안쓰러운 행보들을 매번 접할 때마다 과거 브릿팝빠로써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영국에 거주했던 적이 없어 100% 단언은 못하겠지만) 현 영국 인디록의 문제점은 90년대 초-중반을 강타했던 '브릿팝 인베이젼'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90년대 초 커트 코베인을 중심으로 한창 형성되던 그런지 물결에 힘입어 수많은 비시애틀 출신 미국 로컬 인디씬 고수들까지 양지로 끌어올려지면서 미국 모던록 음악이 글로벌한 주목을 한몸에 받자 세계적으로 가장 훌륭한 인디씬을 조성하고 있던 영국 록음악계는 라이벌 의식 혹은 위기심리에 기인하여 미국 음악계와 어설픈 대립각을 자의적으로 형성하기 시작하는데, SUEDE의 브렛 앤더슨이 유니온잭 앞에서 요염한(?) 포즈를 취한 사진을 커버로 개재하며 미국 그런지 세력을 도발했던 1993년 셀렉트(Select)지의 'Yanks Go Home' 에디션이 바로 그 전조의 시작이었다. 이후 NME를 비롯한 수많은 영국 음악미디어들은 공동단합 코뮌테른을 형성하며 갓 스무살 넘긴 애송이 '브릿팝' 밴드들을 그렇게 근 십년간 줄창 대놓고 띄워준다. 아, 물론 '브릿팝 인베이젼' 시대 덕에 OASIS, RADIOHEAD같은 몇몇 생존 밴드들이 오늘날 거장의 반열에 오르는 성과를 거두긴 했지만 당시 UK 음악팬들(당시 '정보 황무지'였던 대한민국에서도 타워레코드 등을 통해 영국 잡지를 구해보며 현지인들 못지않게 정보에 빠삭했던 골수 브릿팝팬들이 꽤 많았다)이 저질 영국 미디어들이 매번 써내려갔던 구역질나는 '그 나물의 그 밥' 브릿팝 재탕 기사들에 신물이 나기 시작한 타이밍 역시 바로 이 때였다. 새로운 로컬 인디 밴드들에 대한 참신한 기사들을 등한시하는 대신 리엄 갤러거, 데이먼 알반이 매일 즐겨 먹는 음식 메뉴는 무엇이며 하루 식사량과 칼로리는 얼마나 되는지, 혹은 저스틴 프리쉬먼의 새 남친은 누구인지, 톰 요크와 알렉스 제임스 등 브릿팝 스타들의 고등학교 성적은 어땠는지, 정황상 누가 봐도 템즈강에 뛰어내려 자살한 게 뻔한 리치 에드워즈에 관해 미스테리 특집을 연이어 남발한다든지 등등의 찌라시급 기사들을 몇 년 동안 지겹도록 봐야했던 그때 그시절이 오늘날 UK 인디록 황폐화의 전조일 줄 어느 누가 감히 예감했으랴.

레코드 수입이 모든 음악 인더스트리 성패의 절대적 핵심이었던 당시, IMF 경제불황의 악재까지 맞물리면서 음반 판매가 확실하게 보장되는 안전빵들(OASIS, BLUR 부류)에만 찰싹 붙어있을 수 밖에 없었던 음악 마켓/미디어의 행태는 한편으론 상황상 어쩔 수 없었던 미봉책이었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무리수들은 결국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가장 탄탄함을 자랑하던 영국 인디음악계(특히 모던록 씬)와 미디어 모두에게 치명타를 입히게 된다. 2000년대에 들어서자마자 몇몇 거물들을 제외한 브릿팝 준치들이 완전 초토화됨과 동시에 브릿팝 인베이젼은 처절하게 공중분해! 이 뿐인가. 열심히 음악만 파야 할 인디 뮤지션들을 졸지에 연예인/셀러브리티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데 앞장섰던 셀렉트는 브릿팝의 거품이 사그라듬과 함께 동반자살하고, 그나마 바른말을 자주 하던 '유서깊은' 멜로디 메이커(Melody Maker)지까지 76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라이벌 NME에게 통폐합되는 비극을 맛본다.  

그로부터 10년이 훌쩍 넘은 2012년 바로 이 시점에서 잉글랜드 런던 출신의 4인조 밴드 TRIBES는 위풍당당하게 질주하다 영국 록음악사상 가장 무기력한 종국을 맞으며 기억 속에서 사라져간 브릿팝의 향수에 관해 당당하게 얘기하고자 한다. 오늘날 브릿팝을 추종하는 음악을 한다면 으레 'OASIS 따라하기'로 귀결되는 밴드들이 대부분이건만(대표적인 예: VIVA BROTHER), 일단 TRIBES는 OASIS나 그외 특정 브릿팝 신화들의 스타일과 이미지를 무작정 통째로 따라하기보다 90년대 브릿팝의 장점들(달달하게 덧입혀진 배킹 보컬 하모니, 뭉개는 코드웍과 클린톤 피킹의 멜로딕한 조화, 템포에 상관없이 흥겹고 듣기 쉬운 록 사운드의 구현 등)을 흡수하여 자신만의 록 사운드로 만들어내보이려는 의지를 데뷔 앨범 [Baby] 속에서 꾸준하게 피력하고자 한다.

물론 [Baby]에서도 몇몇 특정 브릿팝 밴드들의 잔상들이 간간히 드러나기는 한다. 특히 이들의 주특기라고 할 수 있는 '센티한' 미드템포 모던록 트랙들("We Were Children", "Corner Of An English Field", "Half Way Home")에서는 EMBRACETRAVIS, 그리고 [Baby] 수록곡들 중 가장 펑키(punky)한 비트를 지닌 "When My Day Comes"에서는 브릿팝 계열 '비주류' 펑크 밴드들(예를 들어 NORTHERN UPROAR같은... 이 밴드를 기억한다면 당신은 진정한 왕년 브릿팝 골수팬)의 주옥같은 90년대 '추억의 멜로디'들이 파편적으로나마 뇌리 속에서 다시 떠오르곤 한다. 그러나 OASIS 노선을 타지 않고도(오히려  BLUR와 SUEDE 느낌이 난다면 또 모를까) 미드템포에서 혼탁한 그런지(grunge)성 코드 스트로크과 깔끔한 클린톤 피킹을 혼용하여 구성진 트윈 기타 로큰롤 멜로디 펀치들을 다양하게 뽑아내는 능력, 그리고 "Sappho", "When My Day Comes" 등의 로킹타임용 트랙에서 2000년대 UK 네오포스트 펑크 밴드들의 가오잡기 코드로 도용되는 조이디비젼류의 초기 UK 포스트펑크 스타일을 굳이 따르지 않는 겸양적 태도 등은 서두에서 언급했던 UK출신 클리쉐이 밴드들과 다른 행동노선을 취하고자 하는 TRIBES의 음악적 방향성을 엿볼 수 있는 장점들이다. 또한 왕년의 브릿팝 스타아이콘처럼 나긋나긋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 남성적인 박력을 뿜어내는 보컬리스트 조니 로이드의 목소리는 밴드 음악의 핵심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로 나름 매력이 있다.

물론 팝 발라드 "Nightdriving"이나 "Himalaya", "Alone Or With Friends"같은 슬로우 모드 발라드 트랙들은 이들이 의도하고자 한 'DOVES식 몽환적 로파이 무드'보다는 좀더 불필요하게 길고 지루하게 늘어지는 듯한 팝 성향의 센티멘탈리즘(90년대 원조 브릿팝 발라드 트랙들도 이런 트랙들이 꽤 많았다)에 좀더 치우쳐져 있고, 그렇다고 그외 느긋한 싱코페이션 리듬을 타고 귓청 안으로 손쉽게 흡수되는 센티멘탈 모던 기타록 트랙들 역시 TRIBES만의 독창적 풍모를 풍부하게 담아냈다고 확신하기엔 조금은 허전하고 아쉬운 구석이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애초부터 우리가 생각하는 '록 명반'의 기준치에 합당한 창조적 어프로치보다 단순 이지리스닝 모던록 음악을 하는 데 좀더 포커스를 맞춰 제작된 듯한 인상을 완전 떨쳐내지는 못한 앨범이라고나 할까. 영국 최고의 메이져 레이블 Island에서 제작된 앨범이니 어련하겠냐마는, 부족한 인디적 애티튜드에 '메이져 레이블 앨범'이라는 검은 별까지 달아버린 이상 이들의 음악에는 메인스트림을 넘어 인디 미디어에까지 광범위하게 환영받을 만한 배경조건도 상당히 미흡한 입장이다. 하지만 만약 과거 브릿팝의 영광이 연속성을 지니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면 아마 TRIBES의 이 데뷔 앨범이야말로 상당히 모범적이면서도 교과적인 형태의 '네오 프릿팝' 으로 인정받을 만한 퀄리티를 지닌 작품이 아닐까. 소프트한 멜랑꼴리 팝 감성(그렇다고 우울하거나 찌질한 감수성을 남발하지 않는다)과 살짝 거칠면서도 에너지 넘치는 록 삘(이는 브릿팝보다 오히려 90년대 미국 FM 라디오 그런지/얼트록의 감촉에 가깝다)을 90년대 비주류 브릿팝 프레임 안에서 2012년산 'TRIBES식 어법'으로 믹스시켜 요즘 세대 입맛과 취향에 합당한 '구리지 않은' 보컬 솔로/하모니의 멜로디 훅과 기타 펀치들을 제법 다채롭게 선사해주는 작품이다. 다만 NME 등의 '정신 못 차린' 일부 영국 언론들에 의해 실제 퀄리티 이상의 지나친 비호를 받고 있는 모습이 거슬릴 뿐. 물론 유수의 미국 미디어들에게 두들겨 맞은 영국산 밴드의 데뷔 앨범 치고는 예상외로 결코 나쁘지 않다는 점만큼은 (적어도 UK 기타록/팝 맹신자들에게) 보장한다....ㅎ 

RATING: 70/100

written by BK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