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EVIEWS/ALT & INDIE

DAMON ALBARN: Everyday Robots (2014)



[Everyday Robots] (풀 앨범)

데이먼 알반(Damon Albarn)의 명성은 언제나 양날의 검과도 같다. BLUR 시절 핀업 스타로서의 대중적 인기는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현재 저스틴 비버 부럽지 않을 정도였지만, 사실 그가 소유한 음악적 스펙트럼은 아이돌 팬덤 안에서 절대 다스려질 수 없을만큼 비범하고도 폭넓은 것이었다. 이는 고릴라즈(GORILLAZ)와 말리 뮤직(MALI MUSIC) 프로젝트를 통해 곧바로 검증된 바이기도 한데, 특히 데이먼 알반 자신의 아기자기한 팝 감수성과 아프리카 음악의 퓨전을 시도했던 MALI MUSIC은 그의 음악적 관심사가 이미 단순한 대중음악의 카테고리를 넘어서 있음을 입증한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왕성한 활동을 꾸준히 과시해온 '라이벌' 톰 요크(Thom Yorke)에 비해 데이먼 알반의 활동은 이후 팝밴드 BLUR의 스타덤에 가려 크게 내세울만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왕년 브릿팝 스타들 중 가장 왕성한 개인활동을 할 것만 같았던 그였지만 BLUR의 데뷔앨범 [Leisure] 이후 23년만인 올해에서야 자신의 첫번째 공식 솔로 앨범 [Everyday Robots]를 선보이게 된 것.

일단 일반적인 BLUR 팬이라면 [Everyday Robots]는 그다지 흥미로운 작품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특히 "Advert""Song 2"같이 신나면서도 펑키(punky)한 그루브를 기대하는 이들에겐 황망한 좌절감을 심어줄 수 있을만큼 '애잔함', '쓸쓸함', '우울함', '나른함' 등의 마이너스 심상들이 주류를 이루지만, 다운템포와 멜랑꼴리 무드 속에서 과외활동들을 통해 조금씩 흘려왔던 '음악가', '몽상가' 데이먼 알반의 비범+소심한 감수성을 논리정연하게 맛볼 수 있는 첫번째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데이먼 알반은 지난 1995년 BLUR의 최대 히트 앨범 [The Great Escape]에서 보여준 미스터빈식 코미디록 "Country House"와 몽환적인 발라드록 "The Universal"의 명암 대조에 비견될만한 이중적 모습들을 데뷔 이래 지속적으로 드러내왔다. GORILLAZ(애니메이션 캐릭터 + 일렉트로닉 프로덕션)와 MALI MUSIC(아프리카 토속음악 + 아날로그 사운딩)의 상반된 프로젝트 행보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지난 2003년 번잡한 일렉트로니카/트립합 뜬금포였던 BLUR의 [Think Tank] 레코딩 과정중에 [Think Tank]와 180도 다른 무드의 베드룸(bedroom)/DIY 소품 [Democrazy] EP를 호텔방에서 혼자 소심하게 만들어 발표한 사례는 조울증처럼 극과 극을 오고가는 그의 이중적 음악 성향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일 것이다. 이번 첫번째 솔로 풀렝쓰 앨범 [Everyday Robots]에서 데이먼 알반은  BLUR 시절의 왁자지껄한 외향적 록밴드 사운드와는 정반대의 사운드, 즉 내향적(소심함+우울함)이고 일인칭 나르시시즘에 입각한 [Democrazy] EP 스타일의 솔로 앨범(마치 현재 인디씬의 트렌드인 아트팝 솔로 앨범처럼)을 지향함으로써 '록스타', '틴아이돌스타'로 셋업된 캐릭터에서 벗어나 데이먼 알반 자신의 내면에서 품고 있던  진실된 자아를 표현하고자 한다.    

이번 솔로 풀렝쓰 [Everyday Robots]는 [Democrazy] EP에서 실패를 맛봤던 베드룸 사운드 감성이 훨씬 더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Democrazy]에선 등장할 수 없었던(호텔방에서 녹음되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겠지만) 퍼커션, 브라스, 피아노 등 다양한 악기들도 절제된 사용법을 준수하며 등장함으로써 [Democrazy]와 비교할 수 없을만큼 사운드가 풍성해졌으며, 스튜디오 레코딩의 안정감 때문에 악기와 보컬의 사운드 텍스쳐도 포크스러운 앨범 분위기에 걸맞게 굉장히 섬세하고 예민하게 캐취되어져 있다. 우울한 베드룸 감성(물론 [Democrazy]처럼 침실에서 만들어진 작품은 아니지만)과 톡톡 튀는 실험주의(다양하게 적용된 퍼커션 음향에서 MALI MUSIC 시절 그의 레게/알앤비/아프로비트 취향이 다시 느껴진다)가 적절하게 버무려진 [Everyday Robot]의 인디(?) 일렉트로닉(indie electronic) 혹은 포크트로니카(folktronica) 사운드는, 데이먼 알반의 천부적 송라이팅과 여성스러운 감성에 힘입어 뱀파이어 위크엔드나 와슈트아웃 등 현존하는 인디팝 사운드에 전혀 밀리지 않는 디테일과 트렌디함을 훌륭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던컨 쉬크(Duncan Sheik)의 우울감 터치는 내향적 팝 송라이팅과 랜디 뉴먼(Randy Newman)의 재치만점 팝 센스가 추가적으로 첨가된 앨범이 바로 [Everyday Robots]라고 한다면 아마 정확한 비유가 아닐지. 

물론 당대를 주름잡았던 대스타가 내놓은 데뷔앨범 속 '소심한' 베드룸 감수성이 얼마나 순수한 강도로 모든 리스너들에게 편견없이 받아들여질지는 의문이지만 적어도 팝과 대중적 인기도의 허상에 상당 부분 과소평가받아왔던 데이먼 알반의 '지극히 개인적인' 음악적 취향과 그 깊이를 제대로 조망할 수 있는 최초의 기회가 바로 이 앨범을 통해 마련된 것이다. 데이먼 알반의 열혈팬이라면 호기심 자극 차원을 넘어 감동의 쓰나미를 얻을 수도 있을만큼 기대치 이상의 퀄리티가 담겨져 있는 작품.


RATING: 76/100

written by BK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