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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S/ALT & INDIE

JIMMY EAT WORLD: Damage (2013)

"appreciation"

지산밸리 참전 등으로 인해 국내에도 이미 수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는 JIMMY EAT WORLD(이하 J.E.W.)의 장점은 '배때기에 기름낀' 메인스트림 밴드임에도 주변의 얼치기 이모펑크 클리쉐들과 달리 프로페셔널 록밴드로서 한눈팔지 않고 음악만으로 진검승부하려는 음악적 열정을 꾸준히 유지해온 밴드라는 점이다. 이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열정적인 로킹 자세를 잃지 않는 리더 짐 애드킨스(보컬, 기타)의 진지함이 떼돈의 탐욕에서 자유롭지 못할 상업적 얼트 뮤지션들 가운데에서도 유독 빛나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이런 식의 '진지함'이 이곳에서 정의하는 '훌륭한 음악(인)'으로서 반드시 지녀야할 필수요건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초기 극인디 시절의 짬밥에서 우러나오는 펑크 스피릿(짝퉁이든 뭐든)을 나름 억지로 유지하면서 파워팝 밴드들도 울고 갈 만큼 뻔뻔스러운 이모(emo)성 멜로디훅을 노골적으로 쏟아내왔던 J.E.W.은 이제 어느덧 메인스트림/얼터너티브 록 계열에서도 손꼽히는 장수 밴드중 한 팀이 되었다. 

J.E.W.의 음악에는 J.E.W.만이 뽑아낼 수 있을 것만 같은 특유의 그루브가 확실히 존재한다. 달콤하지만 명확한 억양의 디스토션 기타 코드웍과 단순무식한 드러밍 사이로 우울함과 흥겨움의 잔상들을 동시에 흩뿌리며 리스너의 귀를 파워풀하면서도 깨끗하게 무한자극하는 펑크록+파워팝의 오묘한 퓨전 그루브/훅이 바로 그것. 급기야는 인디 계열에서도 J.E.W. 스타일의 전매특허 록 그루브가 무의식적으로 차용되는 경우가 간혹 발견되곤 하는데, 가령 작년 [Attack On Memory]로 로파이 펑크 센세이션을 일으킨 바 있던 CLOUD NOTHINGS의 음악에서도 J.E.W. 영향의 흔적이 은근슬쩍 느껴졌을 정도였으니("Stay Useless" 참조)...

팝 어프로치와 록 그루브 간의 노골적인 동거로 인해 J.E.W. 음악 본연의 에너지와 감수성을 상당부분 날려버렸던 [Invented (2010)]에 이어 3년만에 내놓은 통산 여덟번째 스튜디오 앨범 [Damage]은 다행히 전작에서 잃어버렸던 J.E.W.다운 모습들을 어느정도 회복한 듯한 인상을 심어주는 작품이다. 또한 불필요하게 거칠고 시끄러웠던 요소들을 노련하게 가다듬어 전작에서 다소 산만했던 팝+록의 퓨전 어프로치와 감정/톤/파워의 밸런스까지 훨씬 더 자연스럽게 잡아냈다. [Damage]의 절제력과 원숙미는 짐 애드킨스 특유의 이모(emo)스러운 하이피치 보컬 억양과 '끊어치는' 기타 그루브가 초장부터 작렬하는 오프닝 트랙 "Appreciation"에서부터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흐트러짐 없이 깔끔하게 후려대는 디스토션 기타코드웍에 이어 리듬파트와 함께 스트레이트하게 쭉 터져나오는 '로킹' 그루브는 "Sweetness", "Pain" 등 파워풀/스트레이트한 이전 J.E.W. 히트 트랙들과 또 다른 방식의 절도감과 안정감으로써 리스너의 귀를 잡아끈다. 또한 디스토션 기타사운드 위주의 초반부와는 달리 리버브톤이 기타와 보컬 파트에 적용된 중간파트부터는 이모 인디 레전드 SUNNY DAY REAL ESTATE 스타일의 몽환적인 무드를 깨끗한 멜로디라인과 함께 선보이며 기존의 방식과 색다른 J.E.W.식 감수성과 훅을 이어나간다.

전형적인 J.E.W.식 미드템포로 전개되는 #2 "Damage"는 클린톤 싱글노트와 어쿠스틱 기타로 펑크(?) 그루브를 만들어내는 J.E.W.의 노련미가 돋보이는 곡. "The Middle"같은 신나는 댄스(?) 그루브나 "Pain" 같은 휘발성 이모 그루브에 익숙한 팬들의 구미에 100% 들어맞을 곡은 아니겠지만, 절판된 인디 데뷔앨범 [Jimmy Eat World (1994)] 시절 어쿠스틱+클린톤 콤비네이션이 중반부에 담긴 명곡 "Reason 346"의 데자뷰가 느껴지는 그루브라 골수팬이라면 오히려 더욱 반가운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트랙일 것이다. 

J.E.W.의 로킹 에너지와 이모 감수성이 깔끔하게 적용된 트랙들은 [Damage] 앨범 후반부에도 다수 포진하고 있다. 수록곡 중 혈기왕성했던 리즈시절 J.E.W.의 에너지가 가장 크게 느껴지는 #7 "How'd You Have Me"는 전작 [Invented]의 히트곡 "Coffee & Cigarettes"와 연계선상에서 감상할 수 있는 곡. 하지만 여성 피쳐링 보컬로써 과다하게 치장된(게다가 "커피 앤 씨가렛~"이라고 외쳐대는 클라이맥스 보컬파트는 그야말로 닭살전율이 일어날 정도로 감정과잉) "Coffee & Cigarettes"보다는 이 곡에서 초기 [Clarity (1999)] 시절의 스트레이트한 이모 감수성을 훨씬 더 담백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짐 애드킨스(Jim Adkins)와 탐 린튼(Tom Linton)의 트윈기타 시스템이 클린톤과 디스토션톤을 넘나들며 아주 절도있게 행해지는 #8 "No, Never", 그리고 90년대 마이클 펜(Michael Penn)풍 얼터너티브 팝 보컬과 80년대 CF 브금 음색의 신쓰 선율이 자아내는 팝 감수성이 J.E.W.표 디스토션+딜레이 기타 배킹의 록 파워와 슬로템포 안에서 한 데 어우러지며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9 "Byebyelove" 역시 후반부에서 놓쳐서는 안될 트랙들이다.

J.E.W.는 분명 그들만의 그루브와 훅 매뉴얼을 독자적으로 지니고 있는 몇 안되는 상업적 얼터너티브 밴드다. 신작 [Damage]는 잠시 퇴화되었던 J.E.W.만의 고유 매뉴얼을 회복하고, 더불어 통산 여덟번째 앨범(그리고 실질적인 메인스트림 알리미 [Bleed American (2001)] 이후 네번째 앨범)이라는 훈장에 걸맞게 베테랑다운 절제미까지 보여주려는 이중 노력의 흔적들이 적절하게 담긴 작품이다. 다양성은 지녔지만 클리쉐적인 감정/스타일 과잉 행동들을 완벽하게 통제하진 못했던 [Clarity]의 개정판이라면 대충 적절한 표현일지? 하지만 FM 라디오용 얼트록 넘버 #4 "Book of Love"나 지겹도록 늘어지는 사랑 발라드  #6 "Please Say No", #10 "You Were Good" 콤보 등 힘을 너무 빼버린 일부 트랙들은 골수 J.E.W.팬들조차도 스킵해버릴만큼 평범한 어필 능력치를 보여준다(마치 범작 [Chase This Light (2007)]과 [Invented]의 필러 트랙들을 다시 듣는 듯한 느낌). 그렇다고 에너지와 신바람 충만한 과거 J.E.W. 히트곡들의 패턴들을 무턱대고 흘금거린다면 명실상부 "The Middle" 따라하기 넘버인 #5 "I Will Steal You Back"처럼 영광 재현은 커녕 재탕의 함정에 속절없이 빠질 수도 있는 법.

[Damage]는 전체적으로 "The Middle", "Sweetness" 쌍포를 거느린 [Bleed American]와 '최고작' [Clarity]를 레알 뛰어넘을만한 결정적인 임팩트는 다소 부족하나, 적어도 메인스트림에서 대성공을 거둔 뮤지션들이 아이디어 고갈로 인해 겪게 되는 매너리즘 루틴을 타는 앨범이 아니라는 점은 확실하다. 오히려 앨범 전체의 완성도를 따져본다면 전곡 감상이 다소 힘겨웠던 [Bleed American] 이후의 앨범들([Futures (2004)]에서 [Invented]까지)에 비해 로큰롤/펑크와 상업적 팝멜로디 사이의 딜레마를 해결하려는 어프로치들의 감정/톤 밸런스가 훨씬 잘 잡혀져 있는 작품이다. 프로덕션적 측면에서 볼 때 트랙 하나하나의 내구성과 앨범 전체의 일관성도 좋은 편. 단, 앞에서 언급했던 전작 [Invented] 스타일의 늘어지는 발라드록 트랙들은 정말 별로다.  


RATING: 71/100

written by BK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