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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S/ELECTRONIC

SYMMETRY: Themes For An Imaginary Film (2011)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 출신의 프로듀서 쟈니 쥬얼(Johnny Jewel)은 이미 오래전부터 나이답지 않은 다재다능함을 미국 인디씬(서부-중부-동부를 가리지 않고)에서 꾸준히 뽐내온 재능꾼으로써 명성이 자자했으나 워커홀릭을 연상케하는 수많은 프로젝트 작업들과 당대한 디스코그래피 속에서 드러낸 팔색조 본능 때문에 '쟈니 쥬얼'하면 '잡탕 카멜레온' 의 이미지만 얼핏 떠올리는 음악팬들 또한 주위에 상당수 존재한다. 물론 다양한 형태의 밴드/프로젝트에 주도적으로 가담한 점, 그리고 그의 주력 밴드 GLASS CANDY와 CHROMATICS를 쓰디 쓴 인디록 밴드에서 달달한 신쓰/전자 그룹으로 드라마틱하게 변모시킨 경력 등은 충분히 그런 오해를 살 만도 하지만, 이 두 밴드가 신쓰팝 밴드로써 보여준 커다란 임팩트를 고려할 때 쟈니 쥬얼이 취해온 일련의 다양한 시도들을 그냥 '변절'로 단정지어 폄하하는 것보다는 비좁아터진 지하 인디 클럽에서 '개런티 만원'짜리로 평생 지낼 밴드들을 시대적 조류에 적합한 이미지를 갖춘 우량 밴드로 체질개선시키기 위한 노력의 과정으로 평가내리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분명 70년대 말 영국 여성 포스트펑크/글램펑크 음악과 뉴욕 노 웨이브(No Wave) 펑크 음악을 적절히 혼용한 초기 GLASS CANDY의 음악(개인적으로도 아주 좋아한다!)은 생기 넘치는 펑크 그루브와 질퍽한 인디 질감이 동시에 잘 버무려진 전형적인 '하드코어' 인디록 음악이긴 했지만 역설적으로 대중들의 사랑을 폭넓게 받을 만한 성질의 것은 절대 아니었다. 이에 반해 지난해 발표된 최신 12인치 싱글 [Warm in the Winter]에서 이들은 초기 지하 포스트펑크의 거친 모습만 기억하던 음악팬들을 경악케 할만한 고감도 전자 질감의 글래머 신쓰팝을 또다시 선보이며 초기 시절과 극대조되는 화려한(???) 조명을 인디 씬으로부터 듬뿍 받지 않았나. 쟈니 쥬얼의 다른 주력 밴드 CHROMATICS는 또 어떤가. 이들은 초기 [Plaster Hounds (2004)] 등의 앨범들을 통해 MUDHONEY 못지 않은 비타협적 인디 개라지록(garage rock)의 대향연을 줄기차게 선보였으나 초기 GLASS CANDY처럼 인디 씬의 반응은 계속 미지근했다. 하지만 '불청객' 쟈니 쥬얼의 본격적 가세로 밴드의 음악색깔은 180도 바뀌었고, 세번째 정규 앨범 [Night Drive (2207)]과 올해 발매를 목전에 둔 네번째 앨범 [Kill For Love]의 전초전 맛배기 싱글 "Kill For Love"에서 들려준 것처럼 이들은 와일드하고 남성적인 초기 웨스트코스트 인디 개러지록 삘을 VELVET UNDERGROUND 풍의 뉴욕 힙스터 포스트모던록 무드로 전환시키고 여기에 나긋나긋하면서도 지적인 섹시미가 풍기는 전자음색까지 대거 삽입하면서 음악성과 대중성(? 인디 씬에서의 대중성이다)을 골고루 갖춘 신쓰팝/레프트필드 하우스 밴드로의 신분변경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오래전부터 이탈로 디스코 특유의 모노톤 전자 비트 지향 음악에 압도(그는 이미 록밴드 활동 초창기부터 비트 지향 음악들에 관해 힙합 프로듀서 이상의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되었던 쟈니 쥬얼은 Troubleman Unlimited Records 레이블 사장 마이크 시모네티가 2000년대 중반 온라인 블로그를 매개로 우연히 설립한 이탈로 디스코 전문(?) 서브 레이블 Italians Do It Better의 캡틴으로 지목되자마자 자신의 손아귀 안에 완전히 들어온 GLASS CANDY와 CHROMATICS 두 밴드 모두를 Troubleman Unlimited Records에서 서브 레이블 Italians Do It Better로 옮겨놓고 이들이 오랫동안 입고 있던 '다크한 코트' 대신 극도로 얄팍한 색깔의 옷들을 자기 의도대로 거침없이 입혀나갔는데, 이 때문에 GLASS CANDY와 CHROMATICS의 장르 트랜지션은 그 어떤 뮤지션의 변절사례들보다 더욱 폭력적으로(적어도 예전 두 밴드의 포스트펑크 에너지를 흠모했던 원조 팬들에게는) 비춰졌던 것도 사실이리라.

그러나 GLASS CANDY와 CHROMATICS의 '변절'은 외견상으로 얼핏 보여지는 모습만큼 극단적이거나 무모한 절차를 밟지는 않았는데, 족보 불분명한 싱글, 데모, EP, 컴필레이션 앨범들로 난도질된 GLASS CANDY, CHROMATICS의 디스코그래피 사이에서 소리없이 묻혀버린 예전 데모/싱글 트랙들 뭉텅이들을 뒤져보면 오히려 변신의 복선을 깔아놓고 자질구레한 시도들을 많이 구사하는 의외의 순간들을 손쉽게 접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쟈니 쥬얼의 재치 번뜩이는 과도기적 시도들이 담겨진 작품들, 예를 들면 GLASS CANDY의 본격적 이탈로 하우스 '데뷔' 앨범 [B/E/A/T/B/O/X (2007)] 전에 나온 셀프릴리즈 데모 풀렝쓰 CD-R 앨범 [The Nite Nurses (2005)]와 CHROMATICS가 전자 밴드로의 변신 직전 슬그머니 릴리즈한 데모 잡탕 모음집 [In Shining Violence (2006)]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완벽한 변신 직전에 항상 전조와 복선을 항상 깔아놓고 글램 펑크와 신쓰팝, 그리고 개러지 록과 하우스/인디팝과의 공통분모를 다양하게 분석/계산해나갔던 그의 모습들이 예사롭지 않은 형태로 담겨져 있다(예를 들어 GLASS CANDY 팬이라면 글램 펑크의 향연 사이에 호기롭게 집어넣은 신쓰 리프가 인상적인 "Iko (Demo)""The Chameleon"을, CHROMATICS 팬이라면 80년대 토크박스와 아날로그 신쓰뮤직을 담담하게 재현한 "Lady"와 SUEDE의 초기 명곡을 어쿠스틱 스타일로 센티멘탈하게 리메이크한 "Animal Nitrate" 을 각각 들어보라). 이탈로 디스코 앨범 컬렉터이기도 했던 마이크 시모네티에 의해 재미삼아 만들어진 온라인 프로젝트 Italians Do It Better에 의해 픽업되어 불과 몇년만에 뉴저지주에서 가장 각광받는 인디 일렉 레이블로 급부상시킨 주역 쟈니 쥬얼의 디스코 변절과정은 파격적인 드라마 요소가 분명 있지만, 즉흥적이고 막무가내가 아닌 스튜디오 작업광으로써 수많은 크로스오버적 트라이(언급한대로 그가 여태껏 쏟아낸 데모 앨범/싱글들은 수십장에 이른다)를 쏟아냈기 때문에 정규앨범에서 이러한 극적인 트랜지션이 아주 스무쓰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단지 결과만 중시하는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그 인고의 과정들이 잘 보이지 않았을 뿐.

올해 GLASS CANDY와 CHROMATICS 모두 수년간의 공백을 깨고 정규 풀렝쓰 앨범을 릴리즈할 예정으로 있는 가운데, 이 두 밴드의 주인장 쟈니 쥬얼은 모든 음악 미디어들이 서둘러 연말 결선을 매조지 짓고 이미 파장에 들어갔던 지난해 12월 중순, CHROMATICS의 오랜 파트너였던 넷 워커(Nate Walker)를 끌어들여 결성한 또다른 변종 프로젝트 SYMMETRY의 첫번째 정규 앨범 [Themes For An Imaginary Film]을 슬그머니 발표했다. 그것도 예상을 뒤엎은 더블 앨범 분량(2시간)으로! 더 재밌는 것은 쟈니 쥬얼의 탁월한 신분세탁능력이 이번에는 앰비언트라는 특수장르를 통해 대대적으로 발현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앨범으로 이태리 디스코(Italo Disco)/신쓰팝에서 앰비언트로 또다시 극적인 장르 변경을 감행한 쟈니 쥬얼은, 앞서 인디 음악 역사상 가장 스무쓰한 변신으로 회자될만큼 완벽한 장르 트랜지션(개라지펑크 → 신쓰팝)과 음악적 완성도를 보여줬던 CHROMATICS의 정규 앨범 [Night Drive]에서 모든 리스너들의 관심이 "Running Up That Hill"이나 "I Want Your Love"같은 이지리스닝 레트로팝에 쏠리는 틈을 타 앰비언트와 클라우트록/디트로이트 미니멀이 혼합된 "Tomorrow Is So Far Away", "Tick Of The Clock" (장장 17분!) 같은 실험적 취향의 트랙들을 앨범 후미에 집어넣으며 앰비언트/익스페리멘탈 뮤지션으로의 제3차 변신에 관한 개연성을 이미 암시한 바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SYMMETRY 프로젝트의 앰비언트 대작 [Themes For An Imaginary Film]이야말로 [Night Drive]에서 '간'만 봤던 쟈니 쥬얼의 과도기적 실험 본능이 드디어 완벽하게 본색을 드러낸 첫번째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Themes For An Imaginary Film'.  '상상 속의 영화를 위한 테마'라는 거창한 제목에서 일단 짐작할 수 있겠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이 앨범은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이 아니다. 그러나 쟈니 쥬얼은 우리가 데이빗 크로넨버그나 데이빗 린치 감독의 굵직한 컬트 영화들 속 영상과 음악을 통해 시너지로 만끽했던 그 기이한 공간감의 일루젼을 마치 안젤로 바달라멘티와 조르조 모로더(이 두 명의 영화음악 거장 모두 쟈니 쥬얼과 레이블 Italians Do It Better의 코드에 맞게 이탈리아인이다)의 혼이 그의 몸속으로 들어온 것처럼 아주 능숙한 앰비언트 필치로 써내려간다. 리드 악기로써 전면에 사용되는 신씨사이저의 멀티레이어 스트럭쳐와 싱코페이션이 절제된 스네어+킥드럼의 콤보 비트(이는 이탈로 디스코의 비트 철학과 일맥상통한다)간의 앙상블로 미니멀하게 써내려간 이 작품을 듣는 내내 앰비언트라는 단선적인 미니멀 문맥에서도 쟈니 쥬얼만의 다재다능한 음악 캐릭터가 이렇게 효과적으로 구현될 수 있다는 사실에 그저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는데, 실제로 [Themes For An Imaginary Film]를 통해 쟈니 쥬얼이 도용하는 아이디어 원천은 그동안의 '행적'만큼이나 굉장히 광범위하다. 앰비언트 드론에 근본적으로 기반하여 앨범 전면을 휘감는 신쓰 리프들은, 80년대 레트로/아방가르드 팝, 크라우트록, 고딕 신쓰, 칠웨이브, 미니멀 테크노, 인디팝, 영화사운드트랙 등을 골고루 아우르면서 복합적인 스펙트럼을 형성하는데 여기에 쟈니 쥬얼의 입맛에 맞게 가공된 힙합과 디스코 형질의 우왁스러운 비트 패턴들이 슬로우 템포 그루브와 함께 뒤섞여 오묘한 하모니를 이루면서 인디 익스페리멘탈 씬에서 자주 접하곤 하는 학구적 성향의 앰비언트 드론 음악이나 그 예전 THE KLFTHE ORB등이 표방했던 잡탕 하우스 풍미의 고전 앰비언트와 다른 논조의 독특한 앰비언트 사운드 장르를 바로 이 두 시간짜리 앨범을 통해 거창하게 써내려간다.

'앰비언트 전문가' 자칭하고 다니는 한 지인은 최근 필자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Themes For An Imaginary Film]는 [Drive] OST의 복사판이다!"

많은 이들이 [Drive] OST와 이 앨범을 직접적으로 연결짓는 이유가 있다. 바로 앞서 잠시 언급되었던 CHROMATICS의 17분짜리 앰비언트 넘버 "Tick Of The Clock"가 이 OST 앨범에 클리프 마르티네즈의 경음악 트랙들과 함께 당당히 수록되었기 때문(원곡 중 5분가량의 서두 부분만 편집됨). 글쎄, 개인적으로 쟈니 쥬얼의 '변절자 선배' 클리프 마르티네즈(Cliff Martinez, 전 RHCP 드러머)의 영화음악 팬이 아니라서 혹은 비(非)도그마 덴마크 감독이 만든(도그마 95 영화를 안 만드는 덴마크 감독???) 이 헐리우드 영화를 일부러 찾아보질 않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클리프 마르티네즈의 이번 OST 작품은 '훌륭'하지만 냉정히 말하자면 그다지 '대단'하지는 않았던 작품이었다. 물론 클리프 마르티네즈의 앰비언트 논조는 영화 '솔라리스 (2002)' OST 작업처럼 언제나 집중력과 진중함, 섬세함을 수반해왔으며 이번 [Drive] OST 역시 '블레이드러너'와 '로스트하이웨이'를 벤치마킹한 듯 싸이코패쓰적이면서도 묵시록적인 분위기를 영화 테마에 맞게 조성하려는 클리프 마르티네즈의 여우스러운 역량(다른 베테랑 필름 스코어러들처럼 그 역시 영화 테마에 의해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능수능란하게 바꾸는 데 익숙하다)이 한점의 오차없이 완벽한(좋은 뜻만은 아니다) 외관을 갖추며 구현되어져 있다. 하지만 이 '완벽한' 앰비언트 인스트루멘탈의 이면에서 발견되는 프로덕션 가공의 과도한 흔적들(마르티네즈 이외 수많은 사람들의 손때가 묻은 듯한.... 헐리우드 OST니 어련할까), OST의 절대적 '갑'인 영화 장면들을 심히 의식하고 만든 듯한 앰비언트 톤/비트의 '속보이는' 전개 방식(군데군데 뭔가 OST 특유의 '예상가능한' 앰비언트 루트를 타는 듯한 뉘앙스들을 자주 흘린다고나 할까)등의 요소들은 결국 이 앨범이 사운드스케잎 과잉의 난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OST용 앰비언트 경음악 수준에 머물러버리는 결정적 패인으로 작용한다(또한 앰비언트 분위기를 깨고 뜬금없이 떠들어대는 팝 트랙들을 이 앨범에서 정녕 덜어낼 순 없었던 걸까). 이에 반해 쟈니 쥬얼이 [Themes For An Imaginary Film]을 통해 도모한 영화음악 시뮬라크르 어프로치는 (주제넘게 말하건데) 오히려 [Drive] OST를 여유롭게 뛰어넘는 아이덴티티, 주체성, (테마의) 일관성, 다양성, 예측불가능성을 풍부하게 수반하며(실제로 [Drive] OST의 군계일학은 바로 CHROMATICS의 5분짜리 트랙이었다는 사실!) 영화 OST적 서사구조를 차용하면서 마치 영화감독까지 된 양 음악을 매개체로 차가운 인디 멜로물(마치 할 하틀리 영화처럼)과 음산한 데이빗 린치형 컬트물이 교차된 영화 잔상이 그려지는 앰비언트 플롯을 자의적으로 써내려간 그의 어프로치들은 기존의 앰비언트 베테랑 뮤지션들이나 영화음악 거장들의 문맥과 다른 형태의 개성과 재기로 번득인다. 특히 레트로 팝의 저질(?) 신쓰 리프와 통속적 힙합/디스코 비트를 빈번하게 사용하면서도 이토록 섬세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앰비언트 템포와 영화적 사운드스케잎을 능숙하게 그려낸 점은 초짜 앰비언트 뮤지션으로써 '카멜레온' 인디 천재 쟈니 쥬얼이 이번 앨범을 통해 마땅히 칭찬받아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쟈니 쥬얼로 인해 영세 레이블  Italians Do It Better의 존재감이 인디 씬에서 계속 커져가고 있는 이 때, 그는 자신과 음악적 공생관계인 이탈로 디스코 리바이벌 전문 레이블 Italians Do It Better을 향해 이번 SYMMETRY 앰비언트 프로젝트로써 또다른 도발을 감행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또 어떠한 도전적 매터리얼을 들고 Italians Do It Better에 기생할지 모르겠으나, 이번 무모한 도전은 승률 백프로 쟈니 쥬얼의 승리로 일단 돌아갔으니 적어도 이 한 장의 앨범을 통해 쟈니 쥬얼의 학구적 행동반경은 더욱 넓어질 것이며 이에 부응하여 소속 레이블 Italians Do It Better 역시 이탈로 디스코의 한정된 카테고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덩달아 조성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쟈니 쥬얼 덕분이다... 그리고 사장 마이크 시모네티는 옆에서 그저 빙긋 웃기만 할 뿐...

RATING: 83/100

written by B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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