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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TS

The Top 30 Albums of 2011: #5 - #1




"Perth"
5
BON IVER
Bon Iver
(4ad / jagjaguwar)
저스틴 버논(Justin Vernon)의 밴드 BON IVER의 두번째 작품 [Bon Iver]는 작년 개인적으로 즐겨들었던 아이템이 아니라는 걸 일단 밝혀두고 글쓰기를 시작하고자 하지만, 여기저기에서 '2011년 최고의 앨범'으로 선정되었던 본작이 최고급 인디 포크록 앨범이라는 점에는 필자 역시 토를 달 수 없는 사항이기에 진부하게도 이 작품을 이렇게 순위에까지 올려놓았다(안티분들에게는 심심한 양해를 바란다). 예전 캐스 머콤(CASS McCOMBS) 리뷰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음악 자체를 새롭게 혹은 독창적으로 창조하는 데 있어서 포크라는 장르가 뮤지션에게 허용하는 운신의 폭이 타 장르들에 비해 그다지 넓진 않다. 물론 밥 딜런에서 엘리엇 스미스까지 불세출 카리스마로 이 한계점을 뚫고 나온 거장들도 분명 역사적으로 다수 있으나 감정기복이 크지 않은 읊조림(단어 그대로 '읊조리다'의 개념이 아니라 리스너와 직접적 교감을 원하는 타 장르 보컬 스타일에 비해 자기애가 훨씬 더 강하고 일인칭적인 면모를 더 크게 드러난다는 점에서의 '읊조림'?) 일변도의 보컬지향적 곡전개에 그 연약한 틀을 깨지 않기 위해 어쿠스틱과 언플러그드 스타일로 잔뜩 소극적으로 움추려 플레이하는 백밴드의 배킹 사운드는, 비록 8점짜리 준척 앨범을 만들 수 있는 잠재성은 충분하지만  그 이상의 새로운 무언가를 밥먹듯이 만들어낼 수 없는 한계점 또한 동시에 지니는 것 또한 사실이다. BON IVER 프로젝트를 통해 저스틴 버논이 뽑아내는 엘리엇 스미스급 감수성의 원천 역시 포크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저스틴 버논은 자신의 록밴드 BON IVER를 하나의 오케스트라로 간주, 각 멤버들이 연주하는 록 악기 소리들을 가장 절제된 형태로 최적화시켜 감수성 넘치는 포크성 보컬 멜로디 라인과 함께 절묘한 하모니를 연출해낸다. '포크 아티스트'로써 악기 사운드 해부학에 관한 저스틴 버논의 비상한 관심은 다양한 장르를 포크 분위기로 퓨전화한 대형 프로젝트 GAYNGS 작업을 통해 이미 드러낸 바 있었지만 25명의 멤버만큼이나 산만하고 현학적이었던 GAYNGS에 비해 그가 [Bon Iver]를 통해 보여준 간결하면서도 타이트한 록밴드 포맷 어쿠스틱(바리톤)-일렉트릭 기타, 베이스, 건반, 드럼 협연의 알찬 구성력은 가히 놀라울 수준의 완성도를 보여준다. 특히 오프닝트랙 "Perth"에서 이 앨범만이 지닌 막강한 구성력을 가장 효과적으로 접할 수 있을 터인데, 앨범이 근본적으로 구현하고자 한 '포크의 입체감'을 위해 모든 악기들이 저마다 지닌 특성들을 미니멀하게 배열시켜낸 이 곡이야말로 [Bon Iver]의 10개 트랙들 중 단연 최고의 명곡일 것이다. 특히 헤비메틀의 포악한 기운을 내뿜을 때만 주로 사용되는 투베이스 킥 사운드는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오케스트라의 팀파니 소리처럼 소프트하면서도 고급스럽게 울려퍼지며 이 곡의 중심축을 잡아내는데, 이 기상천외한 투베이스 킥 포크 드럼의 절제된 뼈대(그리고 정돈된 터치에 의해 수시로 들어가는 심벌 솔로 타격 역시 굉장히 변칙적 패턴이지만 아름다운 뽐새를 잃지 않는다) 위에 존 애버크롬비나 빌 프리셀의 일렁이는 아방가르드 재즈 기타 톤을 연상시키는 기타 리프와 명상적 삘 충만한 베이스 색소폰의 조합은 마치 ECM 레이블 재즈 음악을 듣는 듯 독특하면서도 이지적인 음향 사운드를 선사함과 더불어 저스틴 버논이 추구하는 '포크 록 앙상블의 센티멘탈리즘' 에 개성과 다양성을 한층 업그레이드시켜준다. 여담이지만, 왜 자꾸 그를 IRON & WINE과 비교하려는 멍청한 바보들이 주위에 많은지 모르겠으나(원시인처럼 덥수룩한 수염 빼면 서로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있나?), 보컬파트만 보더라도 "Minnesota, WI" 에서 유독 두드러지듯 버넌이 교차적으로 불려제끼는 팔세토/바리톤 보이스의 질감은 IRON & WINE 류의 화이트 트래쉬형 인디포크보단 오히려 TV ON THE RADIO의 세련된 인디록 스타일에 더 닮아있다. 비록 간소한 미니멀 터치이지만 저스틴 버논의 완벽한 디렉션에 의해 악기의 특성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구성지게 담아내면서 TVOTR의 인디록 아우라, GAYNGS의 익스페리멘탈리즘/퓨전정신 등 포크의 단선적 면모를 뛰어넘어 풍부하면서도 다양한 포크 스펙트럼을 발산하는 [Bon Iver]는 바로 그런 의미에서 바로 이 시간에도 쉴새 없이 튀어나오는 포크성 인디 앨범들의 틈바구니에서 유독 빛을 발하는 포크 명반으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대중성까지(빌보드 2위? ㅎㅎ) 동시에 잡아냈으니, 그렇다면 이 앨범의 가치에 관해 구구절절한 서술이나 해설이 과연 필요할까...


"Hysterical Strength"
4
ST. VINCENT
Strange Mercy
(4ad)


"Doorstep"
3
TUNE-YARDS
W H O K I L L
(4ad)
이 앨범은 분명 2000년대 최고의 익스페리멘탈/아방가르드 팝 걸작일 것이다. 미국 오클랜드 출신의 여성 뮤지션 메릴 가버스(Merill Garbus)의 솔로 프로젝트 tUnE-yArDs 데뷔앨범 [BiRd-BrAiNs (2009)]는 소형 레코더로 수시로 녹음한 보컬 사운드를 토대로 자기 방에서 즉석으로 만들어진 100% DIY 앨범으로, 뭔가 엉성한 기색은 다분했지만 호기심을 자극시키는 로파이 사운드 듣는 재미가 나름 솔솔했던 작품이었다. 2011년 발표된 두번째 역작 [w h o k i l l]은, 영국의 거대(?) 인디 레이블 4AD와 계약 체결에 성공한 뒤 스튜디오에서 최종 녹음이 이루어진 터라 프로듀싱 측면에서 전작보다 훨씬 더 안정되고 탄탄한 음원 캐취가 이루어졌다. 물론 [BiRd-BrAiNs]에서 보여줬던 tUnE-yArDs 특유의 로파이 질감과 일당백 DIY 방식은 [w h o k i l l]에서 그대로 보존하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이 앨범 안에서만큼은 기름진 스튜디오 작업 전환으로 인한 '폐해'의 흔적따위를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우쿨렐레+보컬+드럼비트, 이 트리오 음원에 의해 다른 배경음들이 리드되는 [w h o k i l l]의 음악적 공식은 앨범 전체에서 물씬 풍겨나는 DIY의 풍모만큼이나 아주 단순하지만, 이 기본적 골격 안으로 색소폰, 베이스, 신씨사이저, 잡다한 샘플 등의 마이너 악기/음향들이 특별한 형식이나 패턴 없이 수시로 치고 들어오기를 반복하면서 매 트랙마다 임프로바이제이션 잼을 듣는 듯 자유스럽고 재미나고 톡톡튀는 연주들이 끊임없이 생성된다. 메릴 가버스가 앨범 안에서 주도적으로 취하는 우쿨렐레+보컬+드럼비트 콤비네이션이 자아내는 원초적 촉감은 에너지과잉이 느껴질 정도로 거칠고 과격한 구석이 다분한데, 말로 설명하기 애매할만큼 독특한 스타일과 감각적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게 한 영감의 원천은 다름아닌 제3세계 월드뮤직이라는 사실이 더욱 놀라움을 안겨준다. 실제로 때때로 터져나오는 이상야리꾸리한 훅들은 최근 미국-유럽 골수 인디 음악 매니어들 사이에서 한창 주목받고 있는 6-70년대 태국 훵크/캄보디아 싸이키 사운드의 이질적 멜로디/비트와 사뭇 흡사하며 우쿨렐레와 흑인 가스펠 스타일의 하이노트 보컬, 원시적 퍼커션 비트의 이국적인 아프리카 사운드는 말리 여성 그리오/젤리 음악들(예를 들어 칸디아 쿠야테 같은 '원조'부터 파투마타 디아와라같은 '신세대' 까지 꾸준히 주목받아오고 있는 일련의 말리 여성 싱어송라이터 음악을 들어보라. 그렇다면 메릴 가버스의 음악적 뿌리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대충 감이 올 것이다)을 연상시키는데, 인디 DIY록, 올드힙합/일렉트로 비트 패턴(특히 어깨춤을 절로 추게 만드는 "My Country", "Killa" 비트가 대표적) 같은 주류(?) 트렌드 장르의 음악적 스트럭쳐에다 마이너중의 마이너장르인 제3세계 월드뮤직 패키지를 메릴 가버스의 감각적 삘에 의해 살짝 얹어내어 독특한 분위기를 한껏 연출해낸 본 작품은 올해 가장 최고의 아이디어와 독창성, 재미성, 예술성을 겸비한 완벽한 익스페리멘탈 인디팝 앨범으로써의 구색을 거의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Cherry Eye"
2
ANDY STOTT
Passed Me By / We Stay Together
(modern love)
2000년대 중반까지 앤디 스토트(Andy Stott)의 아이덴티티는 (비록 맨체스터 덥테크노씬에서 베테랑 대접을 받고 있으나) 하우스와 테크노의 가장 정형적인 카테고리 안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평범한 종류의 것이었다. 그의 이름을 테크노 매니어들에게 처음으로 뚜렷하게 알린 계기가 되었던 [Merciless (2006)] 작품의 경우만 보더라도 그렇다. 물론 명상적인 앰비언트 무드와 덥 비트, IDM 프로듀싱을 미니멀 테크노 루트에 실어 효과적으로 뽐냈던 정통 테크노 수작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딥하우스와 댄스플로어 근처를 얼쩡대며 귓구멍으로 쉽게 들어오는 비트와 샘플 커팅 제조에 중점을 두었던 그의 디제잉 필로쏘피는, 거장 대우를 받으며 까임방지 영역권으로 일찌감치 치고 나간 다수의 미니멀 테크노 베테랑들과 일렉트로/개라지 비트에 깊이 동화된 신진 일렉트로닉 세력들의 아성과 기세에 비한다면 그다지 두드러지는 어필 요소가 없었던 것 역시 사실이었다. 하지만 2011년 두 장의 EP 앨범을 들고 새롭게 등장한 앤디 스토트의 모습은 예전의 그저그랬던 UK 테크노-하우스 뮤지션이 더이상 아닌, 또 한명의 걸출한 맨체스터 일렉트로닉 거장 아티스트의 탄생이라는 수식어구가 아깝지 않을 만큼 실로 거대한 위용을 화려하게 뽐내며 대역전극의 이변을 연출하는 데 성공한다. 이전 앤디 스토트의 프로듀싱 공식에서 꼭 빠지지 않았던 테크노/하우스/덥의 요소는 분명 이 두 앨범 [Passed Me By]와 [We Stay Together]에서도 기본적으로 근저에 깔아놓고 있다. 하지만 비트와 그루브로 대변되는 하우스/테크노의 장르적 요소들이 이 작품에서는 아날로그 텍스쳐와 불규칙한 템포/비트의 실험적 난도질에 의해 철저하게 깔아뭉개져 그저 윤곽으로만 겨우 확인될 뿐이다. 이렇게 하우스/테크노의 실질적 매터리얼을 거의 분쇄하듯 갈아버리면서 생겨난 기존 앤디 스코트식 음악 프레임 내부의 공백들은 왜곡된 질감/원시적인 중량감을 뽐내는 베이스/드럼 비트 콤보, 디렉션 불투명한 템포/리듬, 노이즈성 아날로그 샘플 음향, 극단적인 로파이 음향효과 등 실험적 색채가 명확한 사운드 조합으로 대신 채워져 있는데 그 낯선 사운드들의 조합을 통해 얻어내는 사운드스케잎과 무드는 어쩌면 음산한 대기 연출의 '클래식' BURIAL의 [Untrue]가 성취했던 그 아성까지 넘어서는 수준의 강렬한 파워와 다양한 입체감을 창조한다. 초슬로우 템포의 하우스/트립합/브레이크 비트에 맞춰(그리고 "Dark Details"에서는 정글비트까지 응용한다) 이펙트 걸린 걸걸한 억양을 거칠게 발산하는 베이스라인과 박자감각을 상실한 듯 무신경하게 두들겨대는 킥드럼(특히 [We Stay Together] EP 파트에서 반스텝 죽이고 지속적으로 두들기는 킥드럼의 변칙적 템포감각은 상당히 이채롭다 )/퍼커션 사이에서 다양하게 이뤄지는 이상야릇한 콤비네이션 패턴은 UK 베이스와 덥스텝이 주창하는 야수성과 변칙성을 확실하게 충족시키면서 동시에 다크하면서도 주술적인, 혹은 악몽을 꾸는 듯한 네거티브 기운들까지 묵직하면서도 살벌하게 조성해나간다. 비트뿐만 아니라 혼탁한 로파이/아날로그 기운으로 곽찬 배경 사운드 역시 (사운드 텍스쳐 지향 익스페리멘탈 음악적 각도에서 바라봤을 때) 최고의 완성도를 유지하며 비트로 조성된 컬트(혹은 고딕)적 풍모에 멋진 화룡점정을 더하는데, 마치 리버스(reverse) 턴테이블을 통해 흘러나오는 소리들을 바늘 소리까지 동시에 채집한 듯한 추상적 드론 사운드에 절처불명의 샘플 굉음들, 그리고 악마적 스모그를 내뿜는 아날로그 신씨사이져의 갑갑한 미니멀 리프 루핑까지 더해지면서 마치 드론, 노이즈, 잡다구니 샘플들로 미스테리한 호러 무드를 연출했던 DEMDIKE STARE의 다크 앰비언트 사운드 디자인을 듣는 듯(우연의 일치인지 DEMDIKE STARE와 앤디 스토트 모두 Modern Love 레이블 소속이다)한 악몽의 뫼비우스 띄를 끊임없이 만들어댄다. 덥 지향의 UK 베이스식 퍼커션/드럼 비트(SHACKLETON)와 컬트/호러 무비의 사운드스케잎(DEMDIKE STARE)이 서로 접목되지만 다른 아류들처럼 BURIAL 라인을 굳이 타지않고 왜곡된 하우스/테크노 프레임과 아방가르드/익스페리멘탈리즘 어프로치를 통해 새로운 트렌드의 일렉트로닉 텍스쳐를  잡아낸 이 EP 컴필레이션 패키지는 2011년 최고의 일렉트로닉 작품집으로 꼽히기에 한치의 부족함이 없는 완성도와 퀄리티를 보여주고 있다. (사족: 이 앨범은 개인적으로 피치포크와 완전 절교(?)케한 원인을 제공했던 앨범이다. 그들이 [Passed Me By]에게 매긴 7.6라는 점수는 그야말로 웃음만 나올 뿐이었는데, 물론 후에 나온 [We Stay Together]에게는 8.2점을, 그리고 이 두장의 EP 앨범을 통합하여 연말 'Honorable Mentions' 챠트 제일 앞쪽에 올려놓으면서 그 죄를 뒤늦게 뉘우치긴 했지만 다량의 리뷰글과 검증안된 리뷰어들의 난립이 부른 폐단의 단면을 보는 듯하여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게 만들었던 앨범이 바로 이 앨범이다)


"Vapor Trails"
1
GROUPER
A I A
(yellow electric)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 출신의 젊은 여성 아방가르드 뮤지션/싱어송라이터 리즈 해리스(Liz Harris)가 2008년에 발표했던 [Dragging a Dead Deer Up a Hill]이 가져다 준 충격 역시 실로 대단한 것이었지만, 2011년 발표된 더블 앨범 [A I A]이야말로 그녀의 지치지 않는 진중한 실험정신과 음악적 열정이 가장 완벽하게 압축되어 있는 DIY 아방가르드 팝 대작 중의 대작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리즈 해리스의 연주 매뉴얼은 상당히 단순하다. 전기 기타 + 전자오르간/키보드 + 카세트 테잎(루핑용) + 여러가지 Boss 수동 꾹꾹이 페달들의 즉석조합으로 이루어진 음향 시스템을 이용하여 창출해내는 배킹음들은 로파이/아날로그 필터링에 의해 혼탁하게 걸러지면서 오묘한 최면마술을 연출하는데, 마치 뿌연 안개와 스모그로 가득한 새벽녘 대기를 뚫고 지나가는 가느다란 한줄기 빛처럼 그녀는 드론/노이즈 음악들 중 가장 섬세하고 아름다운, 그리고 가장 감성적인 목소리를 지닌 고감도 드론 사운드를 로파이/아날로그 앰비언스를 비집고 조심스럽게 뽑아낸다. 리즈 해리스가 노이즈와 드론을 바라보는 시각은 근본적으로 노이즈에 감수성과 여성성, 그리고 12음계 멜로디의 실마리를 탐구해온 최고의(? 물론 필자의 기준에서다) 여성 컨템포러리 클래식/아방가르드 음악가 엘리안느 라디그(Eliane Radigue)의 그것과 분명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예민한 감성과 노련한 음악적 안목에서 우러나온 미니멀 기타 터치들(그리고 빈티지 키보드와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된 잡다구니 소음들)이 리버브+트레몰로+디스토션+피드백 등의 이펙트(의도된 바는 아니겠지만 이 때문에 M.B.V.적 기타 뉘앙스가 "I Saw A Ray" 등의 트랙에서 간간히 흘러나오기도 한다)에 실려 단순하게 쭉 뻗어나가는 드론/노이즈 음색들(그렇다. 그녀가 지속적으로 걸어대는 드론 사운드 매터리얼 자체 역시 그녀가 고집하는 간결한 DIY 악기 유닛만큼이나 한결같이 단선적이다. 요시히데 오토모처럼 미치광이스럽지도, 필립 젝처럼 로파이/아날로그에 100% 함몰되지도, 베른하르트 군터처럼 현학적으로 잘난채 하지도, 크리스티앙 페네스처럼 남성우월적이지도 않은 그런 종류의 단순함이라고나 할까. 굳이 따지자면 앞서 언급한 엘리안느 라디그나 슈테판 마티유 등의 감수성어린 단선적 드론/노이즈 취향과 흡사하다)은 일반적 팝 멜로디 훅을 생성하는 주요 음계들을 건드리며 이 시대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청순가련한 아방가르드 소음(?) 음향으로 변성되는 장관을 연출하고, 포크가수가 통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하듯 이 소음성 음향들을 반주삼아 신비로운 싸이키델릭 포크 음색의 리버브 보컬을 접목시켜 황량쓸쓸한 앰비언트/드론 무드에 멜랑꼴리한 인간적 심상까지 더불어 생성하는 미덕을 동시에 발휘하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비슷한 성향의 또다른 여성 뮤지션 줄리애나 바윅(Juliana Barwick)이 올해 발표한 새앨범 [The Magic Place]과 [A I A] 앨범을 비교하기도 하나, 깔끔한 에코(echo)로 도배된 보이스와 기름진 프로듀싱의 과잉 속에서 팬시한/고급스러운 신비로움을 자아내려 안간힘을 썼던 줄리애나 바윅에 비해 리즈 해리스의 실험성은 이보다 훨씬 서민적인(달리 말하자면 순수한 '인디' 정신과 일맥상통하는) 로파이 프로듀싱의 고집스러움으로 언제나 귀결되며 또한 그녀의 자폐적/내성적 성격에서 비롯된 소극적 '혼자서 다하기' 습관 역시 작가주의적 DIY 음악으로 승화되어 100% 자신의 가내수공에 의해 일인칭/개인적 억양과 스토리가 완벽하게 그려진 대작을 창조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되어준다. 또한 그녀는 훌륭한 감촉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보컬에 대한 집착이 (적어도 [A I A]에서만큼은) 거의 없어 보인다. 소시절 타의(부모님!)에 의해 아카데믹한 (클래식) 교습을 받아 익힌 건반 테크닉과 팝성향 보컬 보이스에만 의존하는 줄리애나 바윅이나 다른 대부분의 여자 솔로 아티스트들과는 달리 리즈 해리스는 자의에 의해 학습하고 계량한 기타 연주와 이펙터 사운드/노이즈/드론 음향을 메인으로 내세우는 반면, 보컬 보이스와 건반(빈티지 키보드/오르간)은 오히려 소박한 추임새를 넣기 위해 사용되는 부수적인 재료로써 다른 악기들과 동등한 수준의 일개 배킹 서브 음향쯤으로 낮춰 이용할 뿐이다. 이러한 멀티아티스트로써의 겸양적 태도는 그녀로 하여금 보컬과잉 텍스쳐에 실험적 풍모를 함몰시키지 않고 단순명료한 보이스와 이질적인 드론 기타간의 아방가르드 팝 앙상블을 여느 팝발라드 음악 못지 않은 대중친화적인 어필능력까지 뽐내며 소박하면서도 아름답게 만들어낼 수 있게 한 근원적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A I A] 앨범의 첫장 [Alien Observer] 재킷을 일단 한번 보라. 휴대용 카메라로 대충 찍은 듯 엉성하고 거칠게 담겨진 밤하늘 별 사진을 제록스 기계로 미니멈 세팅 하에 다시 흑백 복사하여 조악한 원본 사진에 그나마 남겨있던 색조와 해상도를 완전히 날려먹은 저 앨범 재킷 속 불투명한 밤하늘 풍경... 하지만 저질명암과 손상된 해상도로 흐릿하게 망가진 저 조악한 별하늘 이미지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 앨범 안에 담겨진 음악들과 리즈 해리스의 연주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르게 되는 연유는 대체 무엇일까. 음악의 느낌을 완벽하게 형상화한 재킷 디자인 아이디어 역시 올해 최고의 앨범 재킷으로써 충분한 형태를 갖추었지만, 무엇보다 초기 시절의 수수한 100% 인디 자세를 그대로 유지하며 감수성(포크/드림팝)-실험성(아방가르드/익스페리멘탈/DIY)의 양극단을 원맨밴드 형식으로 가장 완벽하게 아우른 이 더블 앨범(이것 역시 플러스 요소) 안의 음악이야말로 올해 최고의 인디 앨범 패키지 에이스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을 만큼 정말 훌륭한 것이다.
30-26   25-21   20-16   15-11   10-6   5-1